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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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은 2007년 4월 16일 버지니아 공과대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조승희가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홀 기숙사에서 학생 2명을 살해하고, 캠퍼스 내 노리스 홀에서 30명을 살해한 후 자살하여 총 33명이 사망한 비극적인 사건이다. 조승희는 2개의 권총을 사용했으며, 사건 발생 전 NBC 방송국으로 소포를 보내 자신의 행적을 남겼다. 사건 이후, 미국 전역에서 추모와 애도의 물결이 일었으며, 총기 규제 및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또한, 버지니아 공대는 캠퍼스 안전 강화 및 희생자 추모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사건에 대한 비판과 법적 공방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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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 |
---|---|
사건 개요 | |
위치 | 블랙스버그, 버지니아주, 미국 (버지니아 공과대학교) |
좌표 | (암블러 존스턴 홀) |
날짜 | 2007년 4월 16일 |
시작 시간 | 오전 7시 15분 |
종료 시간 | 오전 9시 51분 |
시간대 | EDT |
대상 | 버지니아 공과대학교의 학생, 교직원 |
유형 | 대량 살상 학교 총기 난사 대량 살인 살인 후 자살 연쇄 살인 |
무기 | 글록 19 권총 발터 P22 권총 |
사망자 | 33명 (범인 포함) |
부상자 | 23명 (총상 17명, 창문에서 뛰어내려 부상 6명) |
범인 | 조승희 |
동기 | 인간에 대한 증오 |
방어 | 리비우 리브레스쿠 케빈 그라나타 G. V. 로가나탄 조슬린 쿠튀르-노왁 하이얀 청 데릭 오델 케이틀린 카니 헨리 리 잭 페트키위츠 매튜 라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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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관련 | |
관련 사건 | 언론 보도 타임라인 |
추가 정보 | |
관련 링크 | en |
2. 사건
총격 사건은 두 번에 걸쳐 발생했다. 첫 번째는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홀 기숙사에서 발생했으며, 조승희가 학생 두 명을 살해했다. 두 번째는 캠퍼스 반대편 노리스 홀에서 발생했으며, 조승희 본인을 포함하여 31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조승희는 공격 당시 .22 구경 발터 P22와 9 mm 글록 19 두 정의 반자동 권총을 사용했다.[41]
사건 발생 순서는 다음과 같다.
시간 | 내용 |
---|---|
오전 7시 15분 |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홀 기숙사에서 총격 사건 발생, 학생 2명 사망.[41] |
오전 8시경 | 수업 시작, 기숙사에서 사망자 발견. |
오전 9시 1분 | 조승희, NBC에 비디오와 사진이 담긴 소포 발송.[6] |
오전 9시 20분 ~ 30분 | 조승희, 노리스 홀 강의실에서 교수 사살 후 학생들에게 총기 난사. |
오전 9시 26분 | 학교 측, 학생들에게 휴교 메일 발송. |
오전 9시 45분 | 경찰, 노리스 홀 진입. 조승희는 자살한 상태. |
오전 9시 55분 | 학교 측, 교내 총기 난사 사건 발생 메일 발송. |
2. 1. 첫 번째 총격
현지 시각 오전 7시 15분경,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기숙사 홀에서 첫 번째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이 곳에서 18세의 에밀리 제인 힐스처와 기숙사 사감이었던 22세의 대학원생 라이언 클라크가 조승희의 총격으로 사망했다.[41]목격자들에 따르면, 조승희는 여자 친구와 기숙사에서 심한 논쟁을 벌인 뒤 자기 방으로 돌아가 권총을 가지고 돌아와 힐스처와 클라크에게 총격을 가해 즉사시켰다고 한다. 대만 출신의 학생 첸 치아 하오는 대만 케이블TV와의 인터뷰에서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홀 건물에서 두 사람 간에 심한 언쟁이 있었고 그 후 그녀에게 총격이 가해졌다"고 말했다.
버지니아 공대에 재학 중인 한 한인 학생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가죽 옷 차림에 권총 2자루를 들고 모자를 눌러 쓴 범인이 기숙사 건물에서 한 학생을 쏘아 죽인 뒤 한참 떨어진 공학부 건물 강의실로 걸어 들어가 학생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면서 "범인은 아시아계이며, 범행 후 자살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41]
하지만 학교 관계자는 이 사건을 격리된 곳에서 벌어진 것으로 판단하여 캠퍼스 전체에 비상사태를 선포하지 않았다.
이후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경찰 당국은 첫 번째 총격 사건과 관련하여 '관심 인물'(person of interest)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인물은 버지니아 공대 인근의 레드포드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으로, 힐스처와 잘 아는 사이였으며, 460번 고속도로에서 검거되었다가 간단한 조사 후 석방되었으나, 추가 조사를 위해 계속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승희는 오전 6시 47분경(동부 일광 절약 시간) 895명의 학생이 거주하는 남녀공용 기숙사인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홀 입구 근처에서 목격되었다. 그는 학생 사서함이 건물 로비에 있어 오전 7시 30분 이후 출입할 수 있는 통행증이 있었지만, 그가 어떻게 더 일찍 건물에 들어갔는지는 불분명하다.
오전 7시 15분경, 조승희는 힐스처가 다른 학생과 함께 사용하던 방에 들어가 그녀를 총으로 쐈다. 총소리를 들은 조교이자 4학년이었던 클라크는 힐스처를 도우려다 조승희에게 총을 맞고 사망했다. 힐스처는 총에 맞은 후 3시간 동안 살아 있었지만, 학교, 법 집행 기관 또는 병원 관계자는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그녀의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후 조승희는 현장을 떠나 하퍼 홀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경찰과 응급 의료 서비스 부대가 옆 기숙사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에 대응하는 동안, 조승희는 피로 얼룩진 옷을 갈아입고 컴퓨터에 로그인하여 이메일과 학생 대학 계정을 삭제한 다음 하드 드라이브를 제거했다. 공격 후 약 한 시간 뒤, 조승희는 캠퍼스 오리 연못 근처에서 목격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국은 조승희가 하드 드라이브와 휴대폰을 물에 던졌다고 의심했지만, 잠수부의 수색은 성과가 없었다.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난 지 거의 두 시간 후, 조승희는 인근 우체국에 나타나 NBC 뉴스에 글과 동영상 녹화물을 담은 소포를 보냈다. 이 자료는 당국에 거의 수사적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소포는 오전 9시 01분에 소인이 찍혔다.
2. 2. 첫 번째 총격과 두 번째 총격 사이
범인 조승희는 첫 번째 총격 이후, 미국 방송사 NBC에 자신의 사진과 사건에 대한 메모가 담긴 소포를 보내기 위해 인근 우체국에 갔다.[1] 이 소포는 오전 9시 01분에 소인이 찍혔다.[6]조승희는 오전 6시 47분경(동부 일광 절약 시간)에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홀 입구 근처에서 목격되었다.[2] 오전 7시 15분경, 에밀리 J. 힐셔의 방에 들어가 총격을 가했고, 조교 라이언 C. 클라크도 총으로 쏴 죽였다.[3] 이후, 조승희는 하퍼 홀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피로 얼룩진 옷을 갈아입고, 컴퓨터에서 이메일과 학생 계정을 삭제한 뒤 하드 드라이브를 제거했다.[4]
약 한 시간 뒤, 조승희는 캠퍼스 오리 연못 근처에서 목격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국은 조승희가 하드 드라이브와 휴대폰을 물에 던졌다고 의심했지만, 잠수부의 수색은 성과가 없었다.[5]
2. 3. 두 번째 총격

첫 번째 총격 이후 두 시간 뒤, 노리스 홀에서 두 번째 총격이 발생했다. 노리스 홀은 공학, 과학, 역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과대 건물이다. 이 건물에서 범인은 30명을 사살했다. 리브레스쿠 교수는 조승희를 몸으로 막아 학생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었지만, 유탄에 맞아 사망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유대인 대학살 추도일이었다.[1]

조승희는 반자동 권총 두 정을 사용했는데, 하나는 .22 구경 발터 P22였고 다른 하나는 9 mm 글록 19였다.[4]
2. 4. 수사 발표
범인 조승희의 시체는 얼굴이 손상되어 신원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다.미국의 시카고선타임스는 현지 시각으로 16일, 이 사건의 용의자가 2006년 학생 비자로 입국한 중국인 남성이라고 보도했었다. 미국 수사당국은 중국 상하이에서 학생 비자를 받아 작년 8월 유나이티드항공편으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24세 중국인 남성이 이번 사건의 범인인지 조사했다고 밝혔다.
이후 현지 경찰은 사건의 용의자로 한국 국적의 영주권자이며 버지니아 공대의 영문학과 4학년 재학생인 'Seung Hui Cho'라고 '''공식 발표'''했다. 한국 언론에서는 이를 처음에 '조승휘'라고 파악했다가[42] '조승희'로 최종 발표했다.[43] 경찰은 조승희의 지문이 발견된 9 mm 글록 19(Glock 19)와 .22 구경 발터 P22(Walther P22) 권총 두 자루를 발견하여 조사한 결과, 범인이 이를 가지고 16일 오전 7시 15분께 기숙사에서 2명을 살해하고, 이어 공학부 건물에서 30명을 사살했다고 파악하였다.
미 수사당국은 이 사건이 공범자 없이 피의자가 단독으로 실행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경찰은 노리스 홀에서 응급 전화를 받은 지 3분 만에 도착했지만, 바리케이드가 쳐진 건물에 진입하는 데는 약 5분이 걸렸다. 체인을 부수지 못하자 한 경찰관이 실험실로 통하는 데드볼트 잠금 장치를 쐈고, 이후 인근 계단으로 이동했다. 경찰이 2층에 도착했을 때, 조가 마지막 총을 쏘는 소리를 들었다. 조의 시신은 노바크 교수의 강의실인 211호실에서 발견되었다.
사건 이후, 2007년 4월 노르이스터와 관련된 강풍으로 인해 응급 의료 서비스가 부상자 헬리콥터 후송을 사용하지 못했다. 총격으로 부상당한 희생자들은 블랙스버그의 몽고메리 지역 병원(Montgomery Regional Hospital), 래드퍼드의 캐릴리온 뉴 리버 밸리 의료 센터(Carilion New River Valley Medical Center), 로어노크의 캐릴리온 로어노크 기념 병원(Carilion Roanoke Memorial Hospital), 세일럼의 루이스-게일 의료 센터(Lewis-Gale Medical Center), 그리고 킹스포트의 홀스톤 밸리 병원(Holston Valley Hospital)에서 치료를 받았다.
버지니아 공과대학교와 경찰의 기자회견을 통해 용의자는 대한민국 출신으로 동 대학교 영문학과 재학 중인 4학년 23세라고 보도되었다.[10][11]
3. 사건의 동기 및 요인과 밝혀진 결과
조승희는 경제적 불평등과 피해망상에 시달리다가 범행을 저질렀다.[13]
사건 다음 날, 용의자 신원이 밝혀지기 전에는 아시아계 젊은 남성이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보도가 나왔다. CNN 등은 두 곳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가 각각 다른 사람의 소행일 가능성도 언급했다. 사건 당일에는 용의자가 일본인 또는 중국인일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나왔고, 중국 정부는 베이징 외무성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정보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4월 17일, 용의자가 한국 출신으로 밝혀지자, 노무현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기자 회견에서 사건에 대해 언급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14][15]
4. 피해자 목록
이름 | 나이 | 소속 | 비고 |
---|---|---|---|
라이언 클라크 (Ryan Clark) | 22세 | 심리학/화학/영어 4학년 | |
에밀리 힐셔 (Emily Hilscher) | 19세 | 축산학과 1학년 | |
미날 판찰 (Minal Panchal) | 26세 | 건축학과 석사과정 | |
고비체띠팔라얌 바슈데반 로가나탄 (G. V. Loganathan) | 53세 | 토목공학과 교수 | |
재릿 레인 (Jarrett Lane) | 22세 | 토목공학 1학년 | |
브라이언 블룸 (Brian Bluhm) | 25세 | 토목공학 석사과정 | |
매슈 궐트니 (Matthew Gwaltney) | 24세 | 환경공학 석사과정 | |
제러미 허브스트릿 (Jeremy Herbstritt) | 27세 | 토목공학 석사과정 | |
파타히 룸반토루안 (Partahi Lumbantoruan) | 34세 | 토목공학 박사학위 | |
대니얼 오닐 (Daniel O'Neil) | 22세 | 환경공학 석사과정 | |
후안 오르티스 (Juan Ortiz) | 26세 | 토목공학 석사과정 | |
줄리아 프라이드 (Julia Pryde) | 23세 | 생명공학 석사 | |
왈리드 샤알란 (Waleed Shaalan) | 32세 | 토목공학 박사학위 | |
제이미 비숍 (Jamie Bishop) | 35세 | 독일어학과 교수 | |
로런 매클레인 (Lauren McCain) | 20세 | 국제학 1학년 | |
마이클 폴 주니어 (Michael Pohle Jr.) | 23세 | 생명과학 4학년 | |
맥신 터너 (Maxine Turner) | 22세 | 화학공학 4학년 | |
니콜 화이트 (Nicole White) | 20세 | 국제학 3학년 | |
리비우 리브레스쿠 (Liviu Librescu) | 76세 | 기계공학과 교수 | 홀로코스트 생존자 |
조셀린 쿠튀르누아크 (Jocelyne Couture-Nowak) | 49세 | 프랑스어학과 교수 | |
로스 앨러메딘 (Ross Alameddine) | 20세 | 영어학/비즈니스학 2학년 | |
오스틴 클로이드 (Austin Cloyd) | 18세 | 국제학/프랑스어학 1학년 | |
다니엘 페레스 쿠에바 (Daniel Perez Cueva) | 21세 | 국제학 3학년 | |
케이틀린 해머런 (Caitlin Hammaren) | 19세 | 국제학/프랑스어학 2학년 | |
레이철 힐 (Rachael Hill) | 18세 | 생명과학 1학년 | |
매슈 러포트 (Matthew La Porte) | 20세 | 정치학 2학년 | |
헨리 리 (Henry Lee) | 20세 | 컴퓨터공학 1학년 | |
에린 피터슨 (Erin Peterson) | 18세 | 국제학 1학년 | |
메리 캐런 리드 (Mary Karen Read) | 19세 | 학제학 1학년 | |
리마 사마하 (Reema Samaha) | 18세 | 도시계획 1학년 | |
레슬리 셔먼 (Leslie Sherman) | 20세 | 역사학/국제학 3학년 | |
케빈 그라나타 (Kevin Granata) | 45세 | 공학 교수 |
이 사건으로 교직원과 학생 32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당했다.
5. 피의자
사건의 피의자 조승희는 버지니아 공과대학교 영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23세의 한국인이었다. 그는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버지니아주 센터빌에 주소를 두고 있었지만, 학교 내 하퍼 홀 기숙사에서 거주했다.[44][45] 1992년 8세 때 가족과 함께 대한민국 서울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재미 한국인으로,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미국 영주권(그린 카드)을 소유하고 있었다. 가족 구성원은 부모님과 누나를 포함하여 총 4명이었다.
조승희는 9mm 권총 등을 사용하여 기숙사와 노리스 홀 등에서 총기를 난사하여 30여 명을 살해하고 자살한 것으로 잠정 결론지어졌다. 범행 직후, 그는 기숙사 방에 "너 때문에 이 일을 저질렀다(You caused me to do this)", "부자집 아이들(rich kids)", "방탕(debauchery)" 등의 내용이 담긴 여러 쪽의 메모를 남겼다. 또한 자살한 그의 팔 안쪽에는 붉은 잉크로 'Ismail Ax'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44][45]
사건에 사용된 권총 2정 (글록 19와 Walther P22)은 조승희가 자신의 신분증을 사용하여 구입한 것으로, 70000JPY 상당이었다.[16][17] 그의 가방에서는 이 권총들의 영수증이 발견되었다.
학교 관계 부처장 래리 힝커(Larry Hincker)는 조승희가 평소 주변 사람들과 교류가 없는 "외톨이(loner)"였다고 말했다.[46] 학교 당국은 조승희에 대한 정보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같은 학교의 한국 학생들 역시 조승희가 한국 학생들의 모임에 거의 나오지 않았고, 그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고 말해, 그가 상당히 고립된 생활을 해왔음을 짐작하게 했다.[47]
미국 언론은 조승희의 고등학교 동창 등을 취재하여 그가 선택적 함구증[18]을 앓았을 가능성을 보도했다. 학교에서 항상 혼자 식사하는 등 고독한 생활을 했으며, "외톨이였다"고 전해진다. 전 클래스메이트는 블로그에 "그가 만약 학교에 총을 가지고 왔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농담을 친구들과 주고받았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조승희는 수업 과제로 제출한 시나리오에서 "아들이 아버지의 입에 대량의 음식을 채워 질식사시킨다"라는 내용을 작성하여, 대학 측으로부터 강제 상담을 받기도 했다.
경찰 수사 결과, 이번 사건은 조승희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지어졌다.
6. 사건 반응
사건 직후, 부시 미국 대통령은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다음 날 현장을 방문했다. 버지니아 주지사 팀 케인은 방일 중 비상 사태 선언을 발령하고 긴급 귀국했다.[13] 일본의 시오자키 야스히사 관방장관과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등 전 세계에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
사건 초기, 용의자가 아시아계 남성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CNN 등 언론은 혼란을 겪었다. 중국 정부는 정보 확인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용의자가 한국 출신으로 밝혀지자 애도의 뜻을 표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 사건을 최우선으로 보도했으며, 시카고 선-타임즈 등에서 오보가 발생하기도 했다.[19] 인터넷상에서는 용의자와 동명이인의 인물이 비방 피해를 입기도 했다.[20]
버지니아 공대에서는 추도 집회가 열렸고, 부시 대통령은 "폭력이 성공할 수는 없다"며 학생들을 격려했다. 미국 전역에서는 조기 게양이 이루어졌고, 대학들은 종교와 관계없이 추도 집회를 개최했다. 페이스북 등 SNS에서는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NASCAR와 같은 스포츠 행사에서도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2007년 6월, 미국 하원은 총기 구매자의 범죄 및 정신 장애 경력 확인을 강화하는 법안을 가결했고, 전미총기협회도 지지했다.[21] 이 법안은 2008년 1월 대통령 서명으로 발효되었다.
용의자가 한국 국적 유학생이라는 사실은 한인 사회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한국 언론은 이 사건을 크게 보도하며 미국 내 반한 감정 고조를 우려했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의 전례를 언급하며 한인들의 우려를 전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긴급 대책 회의를 주재하고, 대한민국 외교통상부는 재미 한국인 안전 대책을 추진했다. 한국관광공사는 CNN 광고를 자제하기로 결정했다.
일부 한국 언론은 미국 사회를 조롱하는 논평과 만평을 게재하여 비난을 받기도 했다. 워싱턴 재미 한국인회의 상임 고문은 미국 방송국에 용의자 국적 보도를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하려 했다.
6. 1. 각국의 반응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은 사건 당일 청와대에서 이 사건을 보고받은 즉시 한-이탈리아 정상회담 기자회견의 모두발언을 통해 '깊은 애도와 유감을 표명하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하였다.[13] 반기문유엔 사무총장도 기자 회견에서 사건에 대해 언급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로라 부시 여사는 사건 다음 날 버지니아 공과대학교에서 열린 추도식에 참석했다.

일본의 시오자키 야스히사관방장관과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등 전 세계에서 추도의 뜻이 전달되었다.
사건 용의자가 한국 국적의 한국인 남성 유학생이라는 정보는 미국 내 한인 사회와 한국 사회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18일, 직접 주재하여 긴급 대책 회의를 열고, 향후 대응 등을 논의했다. 대한민국 외교통상부는 재미 한국인에 대한 보복 사건에 대비해 안전 대책을 추진할 방침을 표명했지만, 미국 내에서 반한 감정이 고조되는 것은 물론, 한인 거주자에 대한 테러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6. 2. 한국인들의 집단 자책감
이 사건을 접한 현지 한인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연합뉴스의 기사에 따르면, 한인 사회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한국인의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을지, 또한 현지 한인들에 대한 보복 살인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지 걱정하였다.[48][49] 혹시 한미간의 사증 면제 프로그램(VWP)에 대한 악영향이 있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48]한국인들은 조승희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집단적인 자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미국의 지도층은 "한국과는 무관한 일"이라며 조승희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였다. 언론들도 "자책감은 삼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은 이 사건의 피해자들을 위해 촛불 등 물품을 제공하며 위로하는데 노력했다. LA 타임스는 "참사 직후 한인들이 촛불 예배를 여는 등의 과민 반응이 오히려 혼란을 야기하며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50] 이러한 한국인들의 집단 자책감은 문화적 차이에서 온 것으로 '극단적 집단주의'라는 비판도 있었다.[51]
7. 캠퍼스 대응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캠퍼스 곳곳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임시 추모 공간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버러스 홀 앞 드릴필드 관측 연단에 꽃과 추모 물품을 놓았다. 학생 단체 '호키스 유나이티드'는 희생자 32명의 이름이 새겨진 호키 스톤 조각을 드릴필드에 반원 형태로 배치했다.[13] 이 추모 공간은 이후 영구적인 기념관으로 조성되었으며, 희생자들을 기리는 32개의 호키 스톤과 생존자를 위한 벤치 2개가 설치되었다.
사건 직후, 한국계 학생들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13] 공식적인 괴롭힘은 없었지만, 일부 한국계 학생들이 심리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가 있다.[13]
사건 발생 시기는 신입생 모집 기간이었지만, 버지니아 공대는 2011년 입학 예정 학생 모집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13] 이는 비극적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대한 학생들의 지지와 관심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7. 1. 비상 서비스 대응
경찰은 노리스 홀에서 응급 전화를 받은 지 3분 만에 도착했지만, 바리케이드가 쳐진 건물에 진입하는 데는 약 5분이 걸렸다. 체인을 부수지 못하자 한 경찰관이 실험실로 통하는 데드볼트 잠금 장치를 쐈고, 이후 인근 계단으로 이동했다.[1] 경찰이 2층에 도착했을 때, 조승희가 마지막 총을 쏘는 소리를 들었다.[1][2] 조승희의 시신은 노바크 교수의 강의실인 211호실에서 발견되었다.[3]사건 이후, 2007년 4월 노르이스터와 관련된 강풍으로 인해 응급 의료 서비스는 부상자를 헬리콥터로 후송하지 못했다.[4] 총격으로 부상당한 희생자들은 블랙스버그의 몽고메리 지역 병원, 래드퍼드의 캐릴리온 뉴 리버 밸리 의료 센터, 로어노크의 캐릴리온 로어노크 기념 병원, 세일럼의 루이스-게일 의료 센터, 킹스포트의 홀스톤 밸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5]
7. 2. 대학교 대응
버지니아 공과대학교는 사건 발생 후 오전 9시 26분에 이메일을 통해 학생들에게 처음 알렸다. 이는 첫 번째 총격 사건 발생 약 2시간 후였다.[11] 총격 사건의 심각성이 드러난 후, 대학교는 그 주 남은 기간 동안 수업을 취소하고, 다음 날 저녁(4월 17일) 집회와 촛불 추모식을 열었다. 노리스 홀은 학기가 끝날 때까지 폐쇄되었다.[12] 대학교는 학생과 교직원에게 상담을 제공했으며,[13] 미국 적십자사는 학생들을 돕기 위해 수십 명의 위기 상담원을 블랙스버그로 파견했다.[14] 대학교 관계자들은 또한 학생들이 원할 경우 학기 과정의 수강을 단축하고도 성적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15]총격 사건 다음 날, 캐슬 콜리시엄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으며, 당시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연설이 포함되었다. 공간이 부족했기에 인근 레인 스타디움에 임시 좌석이 마련되었다.
사건 발생 후 1일 이내에, "호키스"(Hokies영어)라고 불리는 버지니아 공과대학교[16] (1896년 학교 응원가에서 유래)[17] 는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호키 정신 추모 기금(HSMF)을 결성했다. 이 기금은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지원, 애도 상담, 추모 행사, 통신 비용, 위로 비용 등을 포함하되 이에 국한되지 않는 비용을 충당하는 데 사용되었다.[18][19] 2007년 6월 초, 버지니아 공과대학교 재단은 HSMF에서 32개의 개별 명칭이 붙은 영구 기금으로 320만달러를 이체했다고 발표했는데, 각각의 기금은 총격 사건으로 사망한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각 기금의 명칭과 운용 방식은 희생자 가족들과 협의하여 결정되었다. 2007년 6월 초까지 HSMF에 대한 기부금은 약 700만달러에 달했다.[20] 2007년 7월, 2001년 연방 9.11 테러 희생자 보상 기금의 특별 관리인으로 활동했던 케네스 핀버그가 기금 분배를 관리하도록 임명되었다.[21] 2007년 10월, 유족과 생존자들은 기금으로부터 11500USD에서 20.8만달러에 이르는 보상금을 받았다.[22]
2007년 6월 초, 버지니아 공과대학교는 몇 주 안에 노리스 홀을 재사용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건물은 총격 사건 이전 주요 입주자였던 공학 과학 및 기계과와 토목 및 환경 공학과 사무실 및 연구실로 사용된다. 건물 전체를 개조하고 더 이상 강의실을 두지 않을 계획이었다.[23] 총격 사건이 발생한 노리스 홀의 남서쪽 건물은 2008년에 폐쇄되었고, 2008년과 2009년에 완전히 개조되었다. 이 건물은 현재 평화 연구 및 폭력 예방 센터, 생체역학 클러스터 연구 센터 및 글로벌 기술 센터와 기타 프로그램을 수용하고 있다.[24]
앰블러 존스턴 홀도 폐쇄되어 개조되었다.[25] 동관은 현재 2011년 가을에 개관한 명예 레지덴셜 칼리지를 수용하고 있으며,[26] 2012년 가을에는 서관이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레지덴셜 칼리지로 다시 문을 열었다.[27]
''매슨길 보고서''가 발표된 후, 일부 피해자 가족들은 당시 버지니아 주지사 팀 케인에게 버지니아 공과대학교 총장 찰스 W. 스테거와 캠퍼스 경찰서장 웬델 플린컴의 해임을 요구했다. 케인은 학교 관계자들이 "충분히 고통을 겪었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28]

7. 3. 캠퍼스 반응
버지니아 공과대학교는 사건 발생 후, 그 주 남은 기간 동안 수업을 취소하고 다음 날 저녁(4월 17일) 집회와 촛불 추모식을 열었다. 노리스 홀은 학기가 끝날 때까지 폐쇄되었다.[13] 대학교는 학생과 교직원에게 상담을 제공했으며,[13] 미국 적십자사는 학생들을 돕기 위해 수십 명의 위기 상담원을 블랙스버그로 파견했다.[13] 대학교 관계자들은 또한 학생들이 원할 경우 학기 과정의 수강을 단축하고도 성적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13]총격 사건 다음 날, 캐슬 콜리시엄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으며, 당시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연설을 하였다. 공간이 만석이 되자 인근 레인 스타디움에 임시 좌석이 마련되었다.
사건 발생 후 1일 이내에,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호키 정신 추모 기금(HSMF)이 결성되었다. 이 기금은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지원, 애도 상담, 추모 행사, 통신 비용, 위로 비용 등을 포함하되 이에 국한되지 않는 비용을 충당하는 데 사용되었다.[13] 2007년 6월 초, 버지니아 공과대학교 재단은 HSMF에서 32개의 개별 명칭이 붙은 영구 기금으로 320만 달러를 이체했다고 발표했는데, 각각의 기금은 총격 사건으로 사망한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13] 2007년 6월 초까지 HSMF에 대한 기부금은 약 700만 달러에 달했다.[13]
총격 사건 발생 후 몇 시간 및 며칠 동안,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사람들을 위한 임시 추모 시설이 캠퍼스 내 여러 장소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버러스 홀 앞에 있는 드릴필드 관측 연단 기단부에 꽃과 추모 물품을 놓았다. 이후, 총격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캠퍼스 내 학생 단체 연합인 호키스 유나이티드 회원들은[13] 희생자 각자의 이름이 적힌 32개의 호키 스톤 조각을 드릴필드 관람석 앞에 반원 형태로 배치했다.[13]
한국계 버지니아 공대 학생들은 처음에는 보복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했다.[13] 공식적인 괴롭힘 주장은 없었지만, 일부 한국인 학생들이 영향을 받았다는 일화적인 증거가 있다.[13]
총격 사건은 예비 학생들이 대학 입학 제안을 수락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시점에 발생했다. 이러한 시기에도 불구하고, 버지니아 공대는 2011년 입학 예정인 학생 5,000명이라는 모집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13]
8. 글로벌 지원 및 봉사 활동
버지니아 공대 커뮤니티는 사건 이후 80개국 이상과 미국 내 모든 주에서 수천 개의 조문 물품과 메시지를 받았다.[4] 여기에는 예술 작품, 카드, 시, 창작 음악 등이 포함되었으며, 이 물품들은 대학 도서관에 수집되어 사진으로 기록되었고 온라인에서 열람할 수 있다.[5]
부시 대통령은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다음 날 현장을 방문했으며, 방일 중이던 팀 케인 버지니아 주지사는 비상 사태 선언을 발령하고 긴급 귀국했다.[13] 일본의 시오자키 야스히사 관방장관과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등 전 세계에서 추도의 뜻이 전달되었다.
용의자가 한국 출신으로 밝혀지자, 노무현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애도의 뜻을 표했다.
미국 전역에서는 조기 게양이 이루어졌으며, 전미 대학에서는 채플 등을 이용하여 종교에 관계없이 참여할 수 있는 추도 집회를 개최했다. 페이스북에서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이미지를 메인 페이지에 표시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NASCAR에서는 레이서와 피트 크루 헬멧, 보닛에 버지니아 공과대학교의 약칭인 "VT"를 그려 추모했다.
9. 정부 대응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로라 부시 여사는 사건 다음 날 버지니아 공대에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했다.[13] 미국 국세청(IRS)과 버지니아 주 세무국은 피해자들에게 6개월의 세금 납부 유예를 허용했다.[13] 팀 케인 버지니아 주지사는 일본 방문 중 급히 귀국하여 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주 정부의 인력과 장비를 즉시 투입할 수 있도록 했다.[13]
케인 주지사는 톰 리지 전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을 포함한 8명의 위원회를 구성하여 사건의 모든 측면을 검토하도록 했다. 위원회는 2007년 8월, 버지니아 공대 경찰이 초기 단서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될 경우에 대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학, 정신 건강 제공자, 법 집행관 등에게 70개 이상의 예방 권고 사항을 제시했다. 위원회는 판단 및 절차상의 오류를 발견했지만, 조승희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며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특히, 버지니아 공대 경찰의 성급한 결론과 캠퍼스 전체에 대한 2시간 동안의 알림 지연에 대한 비판을 인정했다. 보고서는 수업 취소 결정과 총기 난사범에 대한 더 강력하고 명확한 초기 경고가 있었다면 사상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13]
이 사건으로 버지니아 주 의원들은 연방 및 주 총기 구매 법률 간의 격차를 재검토하게 되었고, 케인 주지사는 2주 이내에 이를 해소하기 위한 행정 명령을 발표했다. 연방 정부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총기 규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범죄자나 정신 질환자의 총기 구매를 막기 위해 주 정부의 전국 즉시 범죄 신원 조회 시스템(NICS) 보고 개선을 의무화하고, 이를 위해 최대 13억달러의 연방 보조금을 승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총기 폭력 예방 브래디 캠페인과 전미총기협회(NRA) 모두 이 법안을 지지했다.[13] 이 법안은 2007년 6월 13일 하원을 통과하고, 12월 19일 상원을 통과했으며, 부시 대통령은 2008년 1월 5일 법안에 서명했다.[13] 2008년 3월 24일, 미국 교육부는 가족 교육 권리 및 개인 정보 보호법(FERPA)에 따른 교육 기록 규정 개정안을 발표하여 학교가 개인 정보 보호와 공공 안전 간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했다.[13]
9. 1. 대한민국 반응
대한민국 국민들은 총기 난사범의 국적이 알려지자 충격과 함께 공공연한 수치심을 느꼈고, 대한민국 정부는 예상되는 여파를 우려하여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서는 촛불 추모식이 열렸다. 노무현 대한민국 대통령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미국이 이 사건에서 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승희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영주권자였지만,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를 "혈통"상 대한민국 국민으로 여겨 죄책감을 느끼고 슬퍼했다. 한 대한민국 평론가는 미국인들의 외국인 혐오적 보복에 대한 두려움은 대한민국 중심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미국 문화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주미 대한민국 대사와 몇몇 미국계 한국인 종교 지도자들은 미국계 한국인들에게 희생자 한 명당 하루씩, 총 32일간의 단식에 참여하여 참회할 것을 촉구했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보복 공격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관련하여, 미국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한 안전 조치가 마련되었다고 발표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번 총기 난사가 "인종 차별이나 대립"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부 대한민국 국민들은 단식 제안에 대해, 이것이 총기 난사의 다른 이유보다는 조승희의 민족성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뉴스 보도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미국 뉴스에서 조승희에 대한 보도가 그의 인종이나 민족성보다는 그의 심리적 문제에 초점을 맞춘 것에 대해 안도하는 듯했다. 한국관광공사는 "Sparkling Korea" 텔레비전 광고를 중단했는데, 이는 난사 사건 뉴스 보도 사이에 대한민국 문화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은 광고를 내보내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용의자가 한국 국적의 한국인 남성 유학생이라는 정보는 미국 내 한인 사회와 한국 사회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한국 주요 언론은 사건을 크게 보도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 반한 감정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의 전례도 있어,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박해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18일, 직접 주재하여 긴급 대책 회의를 열고, 향후 대응 등을 논의했다. 대한민국 외교통상부는 재미 한국인에 대한 보복 사건에 대비해 안전 대책을 추진할 방침을 표명했지만, 미국 내에서 반한 감정이 고조되는 것은 물론, 한인 거주자에 대한 테러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미국인에게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한국관광공사는 CNN 텔레비전에서 한국 관광 홍보 광고 방송을 자제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의 일부 언론은 용의자가 한국계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는 논평 등에서 미국 사회를 조롱하기도 했다.
10. 학계/산업계 반응
북미 전역의 수백 개 대학과 대학교는 공식적인 애도와 자체 추모 행사, 기념식, 기타 지원 행위를 통해 이 사건에 대응했다. 버지니아 공대의 전통적인 스포츠 라이벌인 버지니아 대학교(UVA)는 4월 17일 밤 촛불 추모식을 열었으며, UVA 총장 존 T. 카스틴 3세는 캠퍼스의 매킨타이어 원형 극장을 가득 채운 학생들에게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계속 나아갈 것을 촉구했다. 일부 학교는 현금 기부, 간부 숙소 제공, 버지니아 공대에 대한 추가 상담 지원을 제공하기도 했다.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과 텍사스 A&M 대학교는 스포츠 라이벌 관계를 공유하며, 추모와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셔츠를 제작했다. 앞면에는 "오렌지와 적갈색이 오렌지와 적갈색을 지원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이는 텍사스와 학교 색상인 오렌지를 공유하고 텍사스 A&M과 적갈색을 공유하는 버지니아 공대를 언급한 것이다. 한편 뒷면에는 "텍사스의 눈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 당신의 정신은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 가장 큰 비극의 시대에 / 당신은 잡을 손이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이는 "텍사스의 눈"과 "애기랜드의 정신"을 언급한 것이다.[6]
미국 내외에서 이 사건으로 인해 많은 대학들이 자체적인 캠퍼스 안전 및 보안 절차와 정신 건강 지원 서비스를 재검토하게 되었다.
11. 기타 반응
국제 캠퍼스 법 집행 관리자 협회(IACLEA)는 2008년 4월 18일 "캠퍼스 안전을 위한 IACLEA 청사진" 보고서를 발표하고, 캠퍼스 안전 개선을 위한 20가지 권고 사항을 제시했다. IACLEA는 선서 경찰관을 제외한 대학 캠퍼스 내 무기 소지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캐나다 싱크탱크 EQUITAS는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관련 보고서를 발표하여, 버지니아 공대의 제도적 의사 결정 과정을 비판했다. 이 보고서는 총기 규제나 정신 건강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조승희의 가족은 그의 누나 조선경의 이름으로 슬픔과 사과의 성명을 발표했다. 조선경은 성명에서 "그는 세상을 울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악몽 속에 살고 있습니다."라며 희생자 가족과 부상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 대한민국, 프랑스, 멕시코 등 여러 국가 원수와 국제적인 인물들이 조의를 표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살인을 규탄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007년 5월 3일 버지니아 주의회에서 연설하고 생존자들을 만나 위로했다. 총격 사건 생존자 케이틀린 카니는 여왕에게 버지니아 공대 색상의 팔찌 32개를 선물했다.
대학과 프로 스포츠 팀, 리그, 스포츠 스타들이 희생자들을 기리고 기금 모금 활동에 참여했다. 워싱턴 내셔널스는 버지니아 공대 모자를 착용했고, D.C. 유나이티드는 특별 버지니아 공대 유니폼을 착용했다. NASCAR는 3주 동안 모든 자동차에 버지니아 공대 데칼을 부착했다. 이스트캐롤라이나 대학교는 10만 달러를 기부했다. 버지니아 공대 개막 홈 미식축구 경기에서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32개의 주황색 풍선이 날려졌다.
조승희가 총기 구매에 eBay를 사용한 사실이 밝혀진 후, eBay는 2007년 7월 30일 총기 관련 물품 판매를 금지했다.
2010년 5월, 밴드 엑소더스는 버지니아 공대 학살에서 영감을 받은 "Class Dismissed (A Hate Primer)"라는 트랙이 포함된 앨범을 발매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현장을 방문했다. 버지니아 주 팀 케인 주지사는 일본에서 비상 사태를 선언하고 귀국했다.[13] 일본 시오자키 야스히사 관방장관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등 전 세계에서 추도의 뜻이 전달되었다.
사건 다음 날, 용의자가 아시아계라는 보도가 나왔고, CNN 등은 다른 사람의 범행 가능성도 언급했다. 용의자가 일본인 또는 중국인일지도 모른다는 보도도 나왔고, 중국 정부는 정보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4월 17일 용의자가 대한민국 출신으로 밝혀지자, 노무현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애도를 표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 사건을 최우선으로 보도했으나, 시카고 선-타임즈 등에서 용의자가 중국 유학생이라는 오보가 나오기도 했다.[19] 용의자가 한국계로 밝혀지자, 동명이인이 비방 중상 피해를 입었다.[20]
대학교는 추도 집회를 주최했고, 부시 대통령도 참석하여 총기 난사를 비난했다.
사건 다음 날, 전국의 학교에서 대피 소동이 잇따랐고, 학교 관계자와 경찰이 과민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미국 전역에서는 조기 게양이 이루어졌고, 전미 대학에서는 종교에 관계없이 참여할 수 있는 추도 집회가 개최되었다. 페이스북에서는 희생자들에게 추모의 뜻을 표하는 이미지를 표시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NASCAR에서는 레이서 헬멧, 피트 크루 헬멧, 보닛 등에 버지니아 공과대학교 약칭 "VT"가 그려졌다.
2007년 6월 13일, 미국 하원은 총기 구매자 신원 확인 강화 법안을 가결했다. 전미총기협회도 지지했으며,[21] 법안은 2008년 1월 5일에 성립되었다.
12. 논란이 되는 반응
2007년 펜실베이니아 주립 대학교 학생 2명이 할로윈을 맞아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 코스프레를 하고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 논란이 되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는 성명을 통해 "이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옷을 입음으로써 이 정도의 무감각함과 기본적인 예의 부족을 드러낸 것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라고 비판했다.
총기 난사 사건을 재현한 아마추어 비디오 게임인 ''V-Tech Rampage'' 역시 비판을 받았다. 게임 제작자인 라이언 램번은 돈을 받고 게임을 삭제하겠다고 했으나, 이후 농담이었다고 밝혔다. 뉴욕주 상원의원 앤드루 란자는 이 게임에 대한 보이콧을 촉구했고, 오스트레일리아 통신부 장관 헬렌 코넌은 공식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램번은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소재로 한 비디오 게임도 제작하여 비판받았다.
13. 지속적인 대응
2008년 11월, 아론 애들러와 에단 블론더가 설립한 B'nai B'rith 청소년 단체의 버지니아 북부 지부는 리비우 리브레스쿠 AZA라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이는 조승희가 자신의 방에 들어오는 것을 몸으로 막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2009년 9월 4일, 버지니아 공대 마칭 밴드는 시즌 개막전 조지아 돔에서 앨라배마 대학교와의 축구 경기를 위해 애틀랜타로 가는 길에 약 약 225.31km를 우회했다. 350명의 밴드 멤버, 20명의 치어리더, 사관생도단의 컬러 가드 멤버들은 라이언 C. 클라크의 모교인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에서 레이크사이드 마칭 밴드 및 방문한 에반스 고등학교 밴드와 함께 공연했다. 이 행사는 클라크를 기리고 그의 이름을 딴 장학금 모금을 위해 센트럴 사바나 강 지역 버지니아 공대 동문회에서 주최했다.
총격 사건 이후 버지니아 공대는 학생들에게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웹사이트와 문자 메시지를 통해 경고 시스템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경고 시스템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활성화되었다.
- 2008년: 캠퍼스 기숙사 근처에서 네일 건에서 폭발한 카트리지가 총성과 유사한 소리를 냄.
- 2011년 8월 4일: 여름 수업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권총을 든 남자를 발견했다고 신고했으나, 경찰은 용의자를 찾을 수 없었음.
- 2011년 12월 8일: 캠퍼스에서 경찰관이 총에 맞아 사망. 범인은 인근 래드포드에서 벤츠 SUV를 강탈하고 버지니아 공대 주차 구역에 주차한 래드포드 대학교의 시간제 학생으로, 제3자에 대한 정기적인 교통 단속 중이던 경찰관에게 총격을 가하고 30분 뒤 자살함.
사건 이후, 미국 전역에서 조기 게양이 이루어졌으며, 전미 대학에서는 캠퍼스 내 채플 등에서 종교에 관계없이 참여할 수 있는 추도 집회를 개최했다. 페이스북에서는 희생자들에게 추모의 뜻을 표하는 이미지를 메인 페이지에 표시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2007년 6월 13일, 미국 하원은 총기 구매자의 범죄 경력 및 정신 장애 경력을 엄격하게 확인하는 법안을 찬성 다수로 가결했다. 전미총기협회도 지지를 표명했으며,[21] 법안은 2008년 1월 5일에 대통령 서명을 거쳐 성립되었다.
13. 1. 기념일 활동
윌리엄 & 메리 대학교의 퀸스 가드 군사 단체는 사건 1주년을 시작으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명예 경비대를 배치하고 있다. 이 명예 경비대는 미국 육군 제3보병연대 (구 경비대)가 무명용사의 묘에 배치하는 명예 경비대를 본떠 만들었다.여러 단체들은 희생자들을 헌정하는 의미로 총기 난사 사건 기념일 전후에 연례 헌혈 행사를 개최해 왔다. 버지니아 공대 동문회 수도권 지부("DC 호키")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연례 헌혈 행사를 개최하고, 기념일 전후에 지역에서 약 5.15km "3.2 for 32" 달리기 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버지니아 공대 동문회 셰난도어 지부 또한 연례 헌혈 행사를 주최한다. 다른 헌혈 행사들은 버지니아 공대 생도단과 "버지니아 공대 ''영원히''"라는 이름으로 버지니아 공대 동문회의 다른 지부들에 의해 개최된다.
버지니아 공대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연례 기념의 날을 개최하며, 촛불 점화식, 화환 헌화, 오전 9시 43분에 묵념, 기념비에서 32분 동안 생도 경비대 배치 등의 행사가 진행된다.[7]
14. 대학교 대응에 대한 비판
워털루 대학교 사회학 교수 케네스 웨스튜스는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대학교의 대응과 ''매센질 보고서'' 모두를 비판했다.[1] 웨스튜스는 총기 난사의 원인을 집단 따돌림이라고 보고, 조승희가 버지니아 공대 영어과에서 겪었던 일이라고 지적했으며, 조승희의 행동에 대한 설명이 그가 말하는 "결함 있는 성격" 설명 이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버지니아 공대 살인 사건에 대한 더 진실된 (그리고 더 유용한) 설명은 조승희의 성격이 아니라 그가 처했던 상황과의 상호 작용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그의 개인적인 정체성이 아니라 그가 누구였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대했는지의 상호 작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라고 말했다.[1]
웨스튜스는 조승희와 매우 유사한 경험을 한, 같은 학과의 또 다른 버지니아 공대 학생의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버지니아 공대와 ''매센질 보고서''가 총기 난사의 원인에 대한 더 완전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한 점을 비판했으며, 그 설명은 "성격과 상황의 상호 작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1]
전 버지니아 공대 영어과장이자 소설가인 루신다 로이 또한 대학이 조승희를 학생으로 대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로이는 자신의 저서 ''침묵할 권리 없음: 버지니아 공대의 비극''에서 조승희와 시 튜터링을 통해 1:1로 작업했으며 그가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2]
로이는 캠퍼스 상담소와 대학 내 다른 사람들에게 조승희에 대해 접근했을 때, 학생이 자발적으로 상담을 요청하지 않는 한 개입할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 결국, 로이가 조승희에게 도움을 구하도록 설득하려는 노력은 성공했다. 하지만, 그가 상담 센터 직원에게 연락한 세 번의 경우, 그는 그들에게서 포괄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는 로이가 조승희의 사망 후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었다. 언론의 질문에 답변하고 버지니아 공대의 지시에 따라 법 집행 기관에 정보를 넘긴 후, 로이는 행정부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다. 조승희가 캠퍼스 상담과 상호 작용한 문서는 분실되었다. 대학은 갑자기 방어적인 입장에 놓였다.[2]
15. 총기 정책에 미치는 영향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은 미국 내 총기 규제 논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총기 규제 찬성론자들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조승희가 총기를 쉽게 구매할 수 있었던 점을 지적하며 총기 규제 강화를 주장했다. 반면, 총기 규제 반대론자들은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 없는 안전 구역' 정책이 오히려 참사를 막지 못했다고 주장했다.[19]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고,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반응이 나타났다. 언론은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일부 오보로 인한 혼란도 있었다.[19] 조승희가 한국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미 한인 사회는 혹시 모를 피해를 우려하기도 했다.[20]
사건 다음 날, 미국 전역의 학교에서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대피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추모 물결도 이어져 미국 전역에서 조기가 게양되었고, 대학 캠퍼스 내에서는 종교와 관계없이 추모 집회가 열렸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NASCAR와 같은 스포츠 행사에서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건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추도 집회에 참석하여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총기 난사 사건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국민은 무기를 소지할 권리가 있지만, 모든 법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총기 규제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었다. 브래디 캠페인 등 총기 규제 강화 단체들은 총기 구매 절차를 더욱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 총기 협회(NRA)를 비롯한 총기 규제 반대 단체들은 총기 소지 자유를 옹호하며 맞섰다. 팀 케인 당시 버지니아 주지사는 총기 규제 논쟁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이후 구성된 검토 위원회는 다음과 같다.
위원 | 설명 |
---|---|
제럴드 매생길 대령 | 위원장, 퇴역 버지니아 주 경찰 국장 |
마커스 L. 마틴 박사 | 패널 부의장, 비상 의학 교수, 버지니아 대학교 의과대학 부학장, 다양성 및 형평성 담당 부회장 |
고든 데이비스 | 전 버지니아 고등 교육 위원회 국장 및 켄터키 고등 교육 위원장 |
로저 듀퓨 박사 | 연방 수사국(FBI) 베테랑이자 법의학 행동 과학 서비스 회사인 The Academy Group, Inc.의 창립자, 전 회장 겸 CEO |
캐롤 앤 엘리스 | 페어팩스 카운티 경찰국 피해자 지원부 이사, 전국 피해자 아카데미 강사, 미국 피해자학회 회원 |
톰 리지 | 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전 하원 의원, 초대 국토 안보부 장관 |
아라다나 A. "벨라" 수드 박사 | 정신과 및 소아과 교수, 아동 및 청소년 정신과 학과장, VCU 의료 센터 버지니아 아동 치료 센터 의료 이사 |
다이앤 스트릭랜드 | 전 로어노크 카운티 제23 사법 법원 판사, 비자발적 정신 병동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보이드-그레이브스 회의 공동 의장 |
2007년 6월 13일, 미국 하원은 총기 구매자의 범죄 경력 및 정신 장애 경력을 엄격하게 확인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전미총기협회의 지지를 받았으며,[21] 2008년 1월 5일 대통령 서명을 거쳐 법률로 제정되었다.
15. 1. 버지니아 맥락
이 대량 살상 사건은 미국에서 총기 규제 논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총기 규제 법안 지지자들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개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승희가 두 정의 권총을 구매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들어 총기가 너무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구매를 막았어야 할 주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총기 규제 반대론자들은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 없는 "안전 구역" 정책으로 인해 다른 학생이나 교직원 중 누구도 무장하지 못했고, 그 결과 조승희를 막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버지니아주에서 면허를 받은 판매자가 총기를 판매하는 것은 신원 조회를 통과한 거주자에게만 제한되며, 영구 거주 외국인도 총기를 구매할 수 있다. 사건 당시 버지니아 법은 권총 구매를 30일에 한 자루로 제한했으나, 이 제한은 2013년 4월 3일에 폐지되었다가 2020년 7월 1일에 다시 법으로 부활했다. 연방 차원에서는 브래디 핸드건 폭력 예방법에 따라 면허를 받은 판매자로부터 총기를 구매할 때 범죄 경력 조회를 거쳐야 하며, 1968년 총기 규제법은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으로 판결된" 사람이 총기를 구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버지니아는 연방 정부가 의무화한 NICS 외에 다른 데이터베이스도 확인한다. 2005년 말 버지니아 법원이 조승희를 스스로에게 위험하다고 선언하고 정신 치료를 받도록 보낸 후, 연방 및 버지니아 주법 사이의 격차로 인해 주 정부는 조의 법적 지위를 NICS에 보고하지 않았다. 케인 주지사는 2007년 4월 30일, 이러한 보고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행정 명령을 발동했다. 2007년 8월, ''매센길 보고서''는 버지니아 주법의 영구적인 변경을 요구하여 주 정부의 신원 조회 요건을 명확히 하고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연방 정부는 이후 전국적으로 NICS에 대한 주 정부 보고를 개선하기 위한 법을 통과시켰다.
15. 2. 캠퍼스 총기 금지
버지니아 공과대학교는 교직원, 학생, 자원봉사자, 방문객을 포함하여 캠퍼스 내에서 총기를 소지하거나 보관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은닉 권총 소지 허가증을 소지한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2005년 4월, 은닉 권총 휴대 면허를 받은 한 학생이 수업 중에 총기를 소지한 것이 발견되었지만, 형사 기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학 대변인은 버지니아 공과대학교가 "학생, 교직원, 교수진, 그리고 방문객의 안전을 위한 상식적인 보호 조치로서 해당 정책을 준수하고 시행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총기 난사 사건 이전에, 2006년 1월, 토드 길버트 의원은 버지니아 하원에 HB 1572 법안을 제출했는데, 이 법안은 버지니아 주의 주립 대학교가 학생들이 캠퍼스 내에서 합법적으로 은닉 권총을 소지하는 것을 막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버지니아 공과대학교는 이 법안에 반대했으며, 법안은 곧 소위원회에서 폐기되었다. 대학 대변인 래리 힌커는 법안 부결에 대해 "대학 구성원들이 주 의회의 조치에 감사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는 학부모, 학생, 교직원 및 방문객들이 우리 캠퍼스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15. 3. 주 및 지역 법률에 미치는 영향
이 대량 살상 사건은 미국에서 총기 규제 논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총기 규제 법안 지지자들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개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승희가 두 정의 권총을 구매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들어 총기가 너무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구매를 막았어야 할 주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총기 규제 반대론자들은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 없는 "안전 구역" 정책으로 인해 다른 학생이나 교직원 중 누구도 무장하지 못했고, 그 결과 조승희를 막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2007년 8월, ''매센길 보고서''(Massengill Report)는 버지니아주 의회가 "모든 고등 교육 기관이 원할 경우 교내에서 총기 소지를 규제할 권리를 설정"하는 법안을 채택할 것을 권고했으며, "법률에 의해 강제되지 않는 한" 캠퍼스 내 총기 소지 금지를 권고했다. 보고서는 또한 총기 난사 사건의 상황과 관련이 없는 총기 규제 조치, 예를 들어 총기 전시회를 포함한 모든 개인 간 총기 판매에 대한 신원 조회를 요구하는 것을 권고했다. 팀 케인 주지사는 2008년 버지니아주 의회에서 개인 간 판매 시 신원 조회 법안을 제정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지만, 해당 법안은 상원 법사위원회에서 부결되었다. 총기 규제 반대론자들은 이러한 광범위한 조치를 불필요한 확대로 보았고, 모든 총기 판매에 대한 완전한 총기 등록으로 가는 전주곡과 유사하다고 간주했다.
총기 난사 사건과 그 여파로 총기 소지자("공개 소지" 및 "은닉 소지 허가" 소지자)가 대학 캠퍼스에서 무기를 소지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를 뒤집으려는 학생 활동가들의 노력이 활발해졌다. 미국 전역의 38개 주가 학교 내 무기 소지를 금지하고 있으며, 그 중 16개 주가 특히 대학 캠퍼스 내 총기 소지를 금지하고 있다.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새로운 단체인 캠퍼스 내 은닉 소지 학생회(Students for Concealed Carry on Campus)가 결성되었으며, 2008년 3월 기준으로 이 단체는 전국 500개 캠퍼스에서 16,000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러 주에서 총기 소지 허가자가 대학 캠퍼스에서 은닉된 총기를 소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고려했다. 그들은 무장한 학생들이 캠퍼스 내 총격범을 성공적으로 제압한 실제 사례를 인용하여 그들의 주장을 펼쳤다. 길버트 하원 의원이 버지니아 주에서 대학 캠퍼스 내 은닉 무기 소지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또 다른 시도는 2008년 3월에 부결되었다. 이 법은 버지니아주 법무장관(Attorney General of Virginia)이 캠퍼스 내 학생 및 교직원이 아닌 사람은 캠퍼스 내에서 제한 없이 은닉된 총기를 소지할 수 있다고 판결했기 때문에, 학생과 교직원만을 위한 것이었다. 이 법은 21세 이상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텐데, 21세 미만은 권총을 구매할 수 없기 때문이다.
15. 4. 반응
이 사건은 미국에서 총기 규제 논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총기 규제 법안 지지자들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었던 조승희가 두 정의 권총을 구매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들어 총기가 너무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구매를 막았어야 할 주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19] 반면, 총기 규제 반대론자들은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 없는 "안전 구역" 정책으로 인해 다른 학생이나 교직원 중 누구도 무장하지 못했고, 그 결과 조승희를 막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총기 난사가 총기 규제에 미친 영향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백악관 성명에 따르면 "대통령은 사람들이 무기를 소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지만, 모든 법을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브래디 캠페인은 개인이 강력한 무기를 구하기가 너무 쉽다며 총기 규제 강화를 촉구했다. 미국 총기 협회(NRA) 이사 테드 누젠트는 CNN에서 논평하면서 총기 금지 구역 폐지를 요구하고,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을 법을 준수하는 총기 소유자가 대량 총기 난사 사건을 종결시킨 다른 사건과 대조했다. 텍사스 주지사 릭 페리는 면허를 가진 총기 소유자가 텍사스 어디에서든 무기를 휴대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제안했다.
일부 다른 국가의 정부 관계자들도 미국의 총기 법과 정책을 비판했다. 당시 호주 총리 존 하워드는 1996년 포트 아서 학살 이후 도입된 강력한 법률이 호주에서 문제가 되는 총기 문화를 막았다고 말했다.
팀 케인 주지사는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총기 정치 논쟁을 비난하며 "이것을 어떤 종류의 성전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곳으로 가져가라고 말한다"고 말했다.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지지자들은 그들이 버지니아 공대 검토 위원회가 제시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총기 난사 사건 외의 문제에 대해 총기 규제를 확대하는 근거로 이 비극을 이용하려는 일부 사람들의 성전에 단순히 대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검토 위원회 위원은 다음과 같았다.
위원 | 설명 |
---|---|
제럴드 매생길 대령 | 위원장, 퇴역 버지니아 주 경찰 국장 |
마커스 L. 마틴 박사 | 패널 부의장, 비상 의학 교수, 버지니아 대학교 의과대학 부학장, 다양성 및 형평성 담당 부회장 |
고든 데이비스 | 전 버지니아 고등 교육 위원회 국장 및 켄터키 고등 교육 위원장 |
로저 듀퓨 박사 | 연방 수사국(FBI) 베테랑이자 법의학 행동 과학 서비스 회사인 The Academy Group, Inc.의 창립자, 전 회장 겸 CEO |
캐롤 앤 엘리스 | 페어팩스 카운티 경찰국 피해자 지원부 이사, 전국 피해자 아카데미 강사, 미국 피해자학회 회원 |
톰 리지 | 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전 하원 의원, 초대 국토 안보부 장관 |
아라다나 A. "벨라" 수드 박사 | 정신과 및 소아과 교수, 아동 및 청소년 정신과 학과장, VCU 의료 센터 버지니아 아동 치료 센터 의료 이사 |
다이앤 스트릭랜드 | 전 로어노크 카운티 제23 사법 법원 판사, 비자발적 정신 병동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보이드-그레이브스 회의 공동 의장 |
미국의 각종 언론 매체들은 이 사건을 크게 다루며 최우선으로 보도했다. 그 과정에서 시카고 선-타임즈 등에서 용의자가 중국 유학생이라는 오보가 나오는 등 혼란이 발생했다[19]. 조승희가 한국계로 밝혀지자, 인터넷상에서는 용의자와 동명이인의 인물이 비방 중상 피해를 입는 등 피해가 나타났다[20].
대학교에서는 17일 오후 (한국 시간 18일 새벽), 추도 집회를 주최했다. 이 자리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참석하여 "폭력이 성공할 수는 없다"며 총기 난사를 비난하고 "평온한 시간은 반드시 올 것이다"라고 학생들을 격려했다.
사건 다음 날인 17일에는 전국의 학교에서 대피 소동이 잇따랐다.
미국 전역에서는 조기 게양이 이루어졌으며, 전미 대학에서는 캠퍼스 내의 채플 등을 이용하여 "Interfaith Gathering For Virginia Tech" 등 종교에 관계없이 참여할 수 있는 추도 집회를 개최했다. 미국의 SNS인 페이스북에서는 사건 희생자들에게 추모의 뜻을 표하는 이미지를 메인 페이지에 표시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미국 최대의 모터 스포츠인 NASCAR에서는 레이서의 헬멧이나 피트 크루의 헬멧, 더 나아가 원래는 스폰서 로고 등이 들어갈 보닛 공간에 버지니아 공과대학교의 약칭인 "VT"가 그려져 있었다.
2007년 6월 13일, 미국 하원은 총기 구매자의 범죄 경력 및 정신 장애 경력을 엄격하게 확인하는 법안을 찬성 다수로 가결했다. 전미총기협회도 지지를 표명했으며[21], 법안은 2008년 1월 5일에 대통령 서명을 거쳐 성립되었다.
16. 법적 여파
2008년 6월 17일, 테오도어 J. 마르코우 판사는 희생자 32명 중 24명의 유족들이 버지니아 주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1,100만 달러의 합의를 승인했다. 다른 8명의 희생자 중 2가족은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2건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이 합의에는 부상자 18명에 대한 평생 의료 지원도 포함되었다.
2011년 3월 29일, 미국 교육부는 초기 총격 사건에 대한 학생 통지가 너무 늦었다는 이유로 클러리 법을 위반한 버지니아 공대에 55000USD의 벌금을 부과했다.[1] 이는 교육부가 부과할 수 있는 최고액이었다.[1] 2011년 3월 30일, 대학은 이 결정에 대해 항소할 의사를 발표했다.[2] 2012년 3월 30일, 연방 판사는 대학이 클러리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결하며 벌금을 뒤집었다.[3] 미국 교육부 행정법 판사인 어니스트 카넬로스는 버지니아 공대가 초기 총격 사건을 가정 폭력 사건으로 판단하고 지속적인 위협으로 보지 않은 초기 결론이 합리적이었다고 판단했다.[3]
2012년 9월 1일, 아르네 던컨 미국 교육부 장관은 카넬로스의 결정을 뒤집고 벌금의 절반인 27500USD를 복원했다.[4] 버지니아 공대 대변인 래리 힌커는 "고등 교육계는 적시성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며 사후에 부서 관리자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통지를 받았다"라고 밝혔다.[4] 던컨은 2014년 1월 3일 5000USD의 추가 벌금에 동의했다.[5] 연방 학생 지원 사무소는 27500USD의 추가 벌금을 요구했으나, 행정법 판사가 금액을 줄였고 던컨이 이에 동의했다.[5] 당시 버지니아 공대는 두 벌금 모두에 대해 항소를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5] 최종적으로 버지니아 공대는 2014년 2월에 총 32500USD를 지불하면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2007년 4월 16일의 비극에 대한 이 장을 닫는다"라고 말했다.[6] 벌금 지불 발표는 총기 난사 7주년인 2014년 4월 16일에 이루어졌다.[6]
2012년 3월 14일, 배심원단은 버지니아 공대가 캠퍼스 경고를 지연한 것에 대해 과실이 있다고 판결했다.[7] 사망한 학생 에린 니콜 페터슨과 줄리아 캐슬린 프라이드의 부모는 불법 사망 민사 소송을 제기하여, 대학 관계자들이 초기 총격 사건 이후 캠퍼스에 더 빨리 경고했다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7] 2013년 10월 31일, 버지니아 대법원은 버지니아 공대와 두 학생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있었다는 재판부의 배심원 지시를 인용하여 판결을 뒤집었다.[8] 버지니아 대법원은 "버지니아 연방과 버지니아 공대 학생 간에 특별한 관계가 있었다 하더라도, 연방이 제3자의 범죄 행위에 대해 학생들에게 경고할 의무는 없었다"라고 판결했다.[8] 주는 궁극적인 책임은 총격 전에 도움을 구하지 않은 조승희에게 있다고 주장했다.[8] 두 가족은 다른 가족과의 이전 합의에 참여하지 않았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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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범인은 `외톨이'"..조승희 누구인가>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07-04-18
[48]
뉴스
<버지니아텍 총격사건 현지교민 반응>-3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07-04-18
[49]
뉴스
가장 큰 우려는 동포들 신변 안전
http://search.ytn.co[...]
YTN
2007-04-18
[50]
뉴스
미 언론 "지나친 자책감 삼가야"
https://news.naver.c[...]
mbn
2010-04-20
[51]
뉴스
조승희 총격
https://news.naver.c[...]
동아일보
2007-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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